한강 - 희랍어 시간

Book 2017. 9. 11. 00:13
채식주의자, 흰, 소년이 온다에 이어 한강의 책으로 네권째 읽게 되었다.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너무나 예민하고 날카로와, 한강의 문장을 읽다보면 눈을 피하고 싶고 숨이 갑갑해져 크게 힘을 들여 호흡을 해야할 때가 많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수시로 바뀌는 화자와 시간과 공간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천천히 집중해서 읽어야만 그 서사의 흐름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게 만든다. 주인공의 삶에 쌓여온 경험들은 누구나 겪어봤을만한 것들이 많지만, 숨막히는 현실과 극도로 예민한 감수성이 결합되어 읽는 사람이 견디기 어렵도록 처절하고 탈출구가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특히 명확한 원인이 없이 병적인 심각한 이상 증상에 시달리게 되는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급격하게 변화를 겪으며 무자비하게 사회 속에서 삶이 짓눌려지고 무기력하게 겨우 생존만을 위해서 앞만 보고 매일을 버텨내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 대한 적나라한 초상이다.

그래도 희랍어 시간은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에 비하면 마지막에 어렴풋하나마 희망을 보여주고 있어 책을 덮은 후 마음의 불편함은 가장 덜한 편이다. 다만 장편 소설 세권을 1년 남짓 기간에 읽게 되니 작가의 소설 구성 및 진행 스타일에 유사한 요소들이 눈에 많이 띄고, 약간 도식적인 느낌도 있어 앞서 두권에 비해 감흥은 미약하다.

그래도 언어라는 것에 대해 작가가 갖고 있는 아주 정밀하고 섬세한 감각을 글의 주요 소재로 사용하여, 작가 자신의 내면을 좀 더 직접적으로 독자에게 드러내보였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 더 가까이 다가가 이해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책 속의 남자와 여자는 번갈아가며 각 챕터의 주인공이 되어 전지적 작가에 의해 그들의 속내와 병의 양상을 독자에게 드러내는데 책장을 넘겨감에 따라 점점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 결국은 하나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한강의 책을 좀 더 읽어보려 하는데, 예사롭지 않은 감수성을 가진 작가인 만큼 형식적으로 너무 새로운 틀을 만들어 이야기를 짜넣으려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흐름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간 소설이 있다면 더 기대하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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