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ley McChrystal - Team of Teams

Book 2017. 9. 18. 23:05
미국 육군에서 34년 복무하고 4성장군으로 은퇴한 저자는, 2004~2006년 사이에 합동 특수 작전 기동 부대를 맡아 이라크의 알카에다와의 전투를 벌이면서 깨달은, 복잡성에 맞서 전통적인 효율성을 추구하던 조직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은퇴 후 기업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였다.

산업화 이후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분업화한 조직 운영 방식이 효율성을 극적으로 높일 수 있게 되면서 거의 모든 대규모 조직의 기본적인 체계는 철저하게 수직적 의사결정 체계와 역할 분담으로 짜여졌다.
이러한 체계의 가장 대표적이고 궁극적인 조직이라 할 수 있는 군대가 ICT 기술 발전에 의해 너무나도 복잡하고 변화의 속도가 빠르며 상호의존성이 높아 예측불가능해진 이 세상에서 제 기능을 하기 위해 변화했는가를 살펴보니, 마찬가지 체계에서 마찬가지 위기에 직면한 대기업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저자는 우선 작은 팀 조직 내에서 공동 목적과 신뢰를 구축하여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론을 살펴보고, 이를 거대 조직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일로에 갇혀 있는 각 조직 간에 투명성과 의사소통을 높여 정보와 자원 등을 서로 공유함으로써 서로에게도 이익이 되고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더욱 더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리더가 권한 위임을 하되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이렇게 적어 놓으면 그 어느 경영 서적이나 조직론 관련 책에든 다 나오는 당연한 소리라 신선함이 없어 보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걸고 작전을 수행하는 전투 부대와 정보 조직에서 실제로 경험한 사례를 들고 있어 그 설득력은 아주 강하다.

특히 최고의 역량이 결집되고 관료주의와 위계질서로  유지되는 미국 군대에서 알카에다의 테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계속 약점을 보이고 실패를 거둔 쓰라린 경험으로부터 얻은 해법이기에, 늘상 위기에 처해있는 대기업 경영진과 직원들도 그 교훈을 경청해서 자신들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 활용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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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스페이스 공감 방청 - 윤종신 & 미스틱

Music 2017. 9. 15. 00:53
EBS 본사가 일산 킨텍스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스페이스 공감 공연장도 같이 일산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8월 중순부터 일산 공연장에서 콘서트가 열리기 시작했고, 한 두 번 신청을 했으나 와이프가 당첨되어 이번에 처음으로 실제 콘서트를 보게 되었다. 사실 지난 주에 이은미 콘서트에 내가 당첨되었지만 다른 약속이 있어서 못가 아쉬웠는데, 기쁘게도 금세 기회가 생겼다.

윤종신은 요새 "좋니"로 음악 인생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기도 하지만, 매달 월간 윤종신으로 꾸준히 새 음악을 발표하는 프로 정신이 정말 투철한 음악가라 할 수 있다. 미스틱의 수장으로서 아끼는 아티스트들을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이번 콘서트에 욕심을 많이 낸 것 같다.

우선 윤종신이 월간 윤종신에서 발표했던 곡 위주로 6곡을 불렀는데, 좋니도 좋았고 지친 "하루"(예전에 곽진언, 김필과 불렀던), "탈진"(찾아보니 슈스케에서 김영근이 불렀었다), "끝무렵" 등이 모두 윤종신의 가수로서의 관록을 느끼게 해주는 열창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매 곡 사이에 곡에 얽힌 얘기를 꽤 상세히 얘기해 주었고, 특히 어른들이 만들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갖출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좋니의 성공이 그런 물꼬를 틀 수 있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갖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는 박재정이 나와 "여권"이라는 곡과 10월 발표 예정인 "악역"이라는 곡을 불렀는데, 예전 슈스케 방송 때는 노래를 잘한다고 별로 못느꼈는데 많이 실력이 늘었고 타고난 재능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윤종신 직후에 불러 약간 비교하자면 내공이 아직 부족한 인상은 어쩔 수 없었지만...

다음으로 역시 슈스케에 출연했던 민서 (본명 김민서)가 나와 "처음"과 "사라진 소녀"라는 두 곡을 불렀다. 슈스케 때도 노래를 너무 잘해서 나중에 잘 되길 바랬는데, 어느새 미스틱에서 윤종신의 지도로 잘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사라진 소녀가 좋았는데, 이 노래는 들을 때마다 부를 때 마다 울게 된다고 했다. 실제로 끝에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 마지막 음절을 채 마무리하지 못하고 우는 모습에, 참 몰입이 대단하고 감성이 풍부한 타고난 가수라고 느꼈다. 다음 진행을 위해 윤종신이 나와서 이 노래는 "미라클 벨리에"라는 프랑스 영화를 보고 쓴 곡이라고 하며 마지막에 감동을 주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너무 좋은 영화이니 꼭 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집에 와서 SK 브로드밴드 IPTV를 검색해보니 마침 이 영화가 무료로 볼 수 있어, 다음에 챙겨 봐야겠다.

그 다음으로는 PERC%NT(퍼센트)라는 친구가 나왔는데 상어송라이터로 최근에 발표한 "Drunk"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끼가 넘치고 곡도 좋아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 아직 미발표 곡인 "수퍼 히어로"라는 곡도 불렀는데 더 예전에 작곡한 곡이라 Drunk 보다는 조금 완성도 못미친다는 느낌은 들었다. 어쨌든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의 음악은 아니지만 앞으로 기대해볼만한 가수라 생각한다.

마지막 순서로 장재인이 나와서 "느낌Good", "Velvet(미발표곡)", "클라이막스" 이렇게 세곡을 불렀다. 윤종신 외 가수로는 가장 관록이 붙어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후렴구를 같이 부르게 유도하는 등 나름 소박한 카리스마를 쌓아가고 있었는데, 역시 싱어송라이터로 매력이 넘치는 가수이긴 한데, 작곡 스타일과 목소리 둘 다 호불호가 갈려 아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앙코르로는 "오르막길"을 모두 다 같이 불렀고, 이로서 무려 2시간 30분 가까운 콘서트를 마무리 했다.

저녁도 못먹고 공연을 봤지만 윤종신의 가수, 프로듀서, 작사/작곡가,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잘 볼 수 있었고, 미스틱이 키우고 있는 재능 있는 젊은 기수들의 실력도 맛볼 수 있어 알찬 시간을 보냈다. 10월12일(목) 밤 12시반에 방송한다니 챙겨봐야겠다.

그리고 일산 주민으로서 특히 2년 후  킨텍스 지역으로 이사할 예정이기도 해서, 앞으로도 자주 EBS 스페이스 공감 콘서트를 직접 즐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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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ve Grass - d'Arenberg, Shiraz, McLaren Vale 2013

Wine 2017. 9. 14. 00:02
호주 쉬라즈 와인으로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그 특징적인 맛을 잘 내는 가성비 좋은 와인이다.

오크 향이 그윽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맛으로 방금 마신 상세르 쇼비뇽 블랑에 이어 육포와 견과류와 함께 한끼줍쇼를 보면서 즐겁게 마시니 더욱 좋다.

투핸즈 등의 대표적인 호주 쉬라즈에 비하면 맛의 농도는 덜 강렬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 더 편안히 마실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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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cerre - Vignerons a Crezancy 2016

Wine 2017. 9. 13. 23:38
코스트코에서 2015 빈티지를 구입해서  마셔 보고 괜찮아서 2016 빈티지도 구입했다.

2만원 미만이면서 상큼한 쇼비뇽 블랑이고 향긋하고 미네랄도 풍성하다.

토마토 카프레제에 바질 페스토 올리브 등과 담백하게 저녁 식사 대신으로 다이어트 식단처럼 되었는데 기분 좋게 저녁 시간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데일리 와인으로 부담없이 마실 수 있어 다음에 코스트코 가서 또 사다 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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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12

Etc. 2017. 9. 12. 23:27
드디어 오늘 뭉쳐야뜬다에서 프라하가 나오고 있다.

7월 8~15일에 우리가 다녀왔는데 바로 그 다음 주에 윤종신 한채아 및 일행들이 프라하를 다녀갔다.

두달이 지났지만 방송으로 우리가 지나갔던 공간을 바로 직후에 촬영한 것을 보니 여행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너무나 푸르렀던 하늘 아래 오래된 시가지의 건물과 다리, 동상이 오랜 세월을 버텨온 도시 프라하.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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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eau Simard 1998

Wine 2017. 9. 12. 22:41
스타필드 고양 오픈 날에 갔더니 2층 일렉트로마트 안에 와인앤모어 코너가 있었다. 지하 1층에 PK마트라는 이마트와 유사한 식료품 판매점에 꽤 큰 와인 코너가 있고 지하 2층 이마트 트레이더스에도 와인이 소규모지만 있어서 2층에 와인앤모어가 또 있다는 말에도 별 기대 않았었다.

그런데 베스트셀러 Top 5라면서 내놓은 와인들이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프랑스 와인들이 있는게 아닌가. 그리 넓지 않은 면적이지만 1960년대 빈티지부터 매우 다양한 와인들이 벽의 냉장 셀러에 상당히 많이 들어 있었다.

몇가지 저렴한 1990년대후반과 2000년대초반 보르도, 부르고뉴, 셍떼밀리옹 와인을 몇병 샀는데, 오늘은 그 중 그래도 가장 자주 오래된 빈티지 판매하는 걸 봤던 Chateau Simard의 1998년 빈티지를 마셔보았다.

처음에 오픈하자 마자 바로 마셨을 때는 향은 괜찮지만 너무나 맛이 텁텁하게 씁쓸해서 메를로 80%, 카베르네 프랑 20%의 조합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디캔팅을 최근에 신에 물방울에서 칸자키 시즈쿠가 하는 스타일로 약간 높은 데서 따르면서 했고, 그러고 나니 맛의 씁쓸함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점차 부드러워지기는 했다.

거의 20년 된 와인이지만 아직 맛이 피크를 지나 시들었다는 느낌은 아니고 그냥 마실 때보다는 육포와 곁들이니 부족한 단맛이 보충되며 꽤 어울리는 맛이 났다.

2002, 2005년 빈티지 등도 예전에 봤었고 시음도 해봤지만 그다시 인상적이진 않았었고, 오늘도 꼭 찾아서 다시 마시고 싶은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생떼밀리옹의 미네랄이 많은 오래된 와인을 저렴하게 맛봤다는 점에서 괜찮은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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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geny Kissin - Beethoven Piano Sonatas (Live, DG)

Music 2017. 9. 12. 02:08

키신이 20여년만에 DG로 돌아와 발매한 첫 음반은 2006~2016년 사이 연주회 실황 녹음 중에서 키신이 직접 고른 베토벤 피아노 음악을 CD 2장에 담은 앨범이다.


피아노 소나타 제 3번, 14번 "월광", 23번 "열정", 26번 "고별", 32번과 창작 주제에 의한 32개의 변주곡이 수록곡으로, 이중 앨범 첫 머리에 수록된 소나타 3번은 2006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의 연주라서 한국 팬들에게는 더욱 의미있게 다가올 듯 하다.


키신은 항상 음반에 대한 평가보다는 라이브에서 실연을 들은 관객들에게 받는 평가가 더 좋았는데, 나도 키신의 예전 음반 중 13살에 녹음한 모스크바에서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 2번 실황 음반과 90년대 초 RCA에서 발매한 카네기홀 실황 쇼팽 음반 두 장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2009년 4월 내한 연주회에서 들었던 프로코피에프와 쇼팽도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당시에는 황홀하게 들었었다.


소나타 3번은 베토벤 초기 곡이지만 규모가 크고 경쾌한 느낌인데, 키신이 시원스럽게 쳐내려가는 스타일이 꽤 잘 어울린다. 그러면서도 2악장의 고요하고 서정적인 느낌도 섬세하게 살려내고 있다. 한 곡이 끝날 때 마다 관객들의 환호성이 실려 있어 듣다보면 함께 흥분감이 고조되는 음반인데, 2006년 내한 공연에 갔던 분들이라면 혹시 본인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수록된 32개의 변주곡은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열정적이고 음울한 짧은 주제로부터 다양한 성격의 짤막짤막한 변주를 펼쳐나가는 화려하고 매력적인 곡이며, 강철처럼 강력한 소리부터 연약하고 섬세한 소리까지 엄청난 스펙트럼을 가지는 키신의 타건을 느낄 수 있는 집중력과 흡인력 높은 연주로 2007년 몽펠리에에서의 실황 녹음이다.


소나타 14번 "월광"은 2012년 뉴욕에서의 연주로, 잔잔하게 시작하는 첫 머리에 객석의 소음이 아직 정리되지 않아 다소 어수선하게 느껴지지만 키신은 흐트러짐 없이 담백하게 호수에 비치는 달빛과 같은 어둡고 환상적인 피아노의 노래를 들려준다. 바로 이어지는 2악장은 순식간에 톤이 바뀌어 상큼하고 우아한 인상을 주고, 다시 급격하게 분위기가 바뀌어 격정적으로 슬픔에 젖어 달려가는 듯한 3악장까지 스튜디오 녹음에 비한다면 약간 정돈되지 않은 부분도 수정 없이 그대로 담아 모범적이면서도 생명력이 넘치는 신선한 연주를 들려준다.


소나타 23번 "열정"은 가장 최근인 2016년의 암스테르담에서의 실황인데, 이 음반에 수록된 다른 연주보다 더욱 예민하고 섬세한 표현을 보여준다. 1악장의 음울함 속에 수시로 불끈 치솟는 격정이 약간 느린 템포로 그려지는데, 타건의 깔끔함은 약간 희생되지만 대신 전달하는 감성의 깊이는 더 아득해진게 키신의 연주 스타일 변화인 듯 하다. 내면 깊은 곳으로 침잠하여 언뜻 덤덤한 것 같지만 연정이 담뿍 담겨 애틋한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가 펼쳐지는 2악장은 키신의 일면 무뚝뚝한 듯 하나 깃털 같은 터치부터 연약한 떨림까지 고스란히 전달해내는 능력이 잘 어울리고 드러나는 연주가 담겨 있다. 어렴풋이 느껴지던 희망은 곧 좌절되고 1악장보다 더욱 격렬하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3악장은 초반부에는 다소 여유를 가지는 템포로 진행되나 점차 열정이 고조되면서 가속되고 타건은 격렬해진다. 하지만 더욱 기억에 남는 건 그 사이에도 드러나는 가녀린 터치와 스러질듯한 애절한 음색이다.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몇 차례 미스터치까지 그대로 남겨두어었지만 연주가 끝나고 짧게 수록된 관객의 환호성은 이 음반에 수록된 것 중 가장 열광적이어서, 왜 키신이 이 연주를 골라 수록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소나타 26변 "고별"은 베토벤과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 사이의 우정에서 빚어진 아름다운 곡이다. 다행히 2006년 비엔나에서 녹음된 연주는 객석의 소음이 충분히 가라앉은 뒤 조용하게 시작되어 영롱하고 명징한 키신의 연주가 1악장에 담긴 이별해야 하는 애틋함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악장 간의 기침 소리 속에서 시작되는 2악장에서도 영롱한 터치는 빛을 발해 헤어짐에 의한 슬픔과 그리움이 사무치게 다가온다. 재회의 기쁨을 노래하는 3악장으로 연결되는 순간은 마법처럼 신비스러우며, 이어지는 활달한 멜로디는 청자에게도 들뜨고 행복한 심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다른 연주에서 강조되지 않아 잘 듣지 못하던 화음까지 명료하게 들려 신선함도 준다.


소나타 32번은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이다. 이 블로그의 주소인 opus111은 바로 이 곡의 작품번호에서 따 온 것이다. 물론 예전에 Naive사의 음반 레이블 중에도 opus111이 있었는데, 아마 역시 이 곡에서 딴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이 곡은 베토벤이 피아노 소나타로 표현하고자 했던 지향점의 최종 도달 결과물로 남긴 중요한 착품이며, 마지막 2악장을 한번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극의 음악을 들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시대와 지역과 환경을 초월하여 우주의 신비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인류의 위대한 예술 성과의 극치에 다다른 음악이라 할 수 있다. 


극명하게 대조되는 단 두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을 키신이 어떻게 펼쳐낼지를 이 음반의 발매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기대했었다. 2013년 베르비에에서 녹음된 이 연주에서 키신은 1악장의 엄격하고 단호함을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다른 곡 연주에서 약간 흐트러지는 모습까지 숨기지 않으면서도 감정에 충실했던 것에 비하면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은 잘 드러내지 않고 있는데, 이는 1악장이 지향하는 성격과 어울리는 접근이라 하겠다. 


2악장은 20분에 이르는 연주로 전체적으로 약간 느린 편이다. 도입부는 의외로 약간 화음이 묵직하게 울리며 아리에타의 주제를 노래하는데 1악장과는 완전히 다른 온화하고 세밀한 터치를 보여준다. 변주가 진행되면서 점차 리듬이 잘게 나뉘고 약간씩 흥겨운 느낌까지 더해지는데 전반적으로 약간 느린 템포여서인지 너무 경쾌해지지는 않고 생기를 잃지 않는 정도이다. 리듬이 거의 재즈에 가까워지는 제3변주에서도 그러한 느낌은 전혀 강조되지 않으며 이어지는 변주에서는 점차 더 느려지면서 각 음의 울림을 도드라지게 하여 더욱 명상적인 느낌이 들게한다. 천상의 별에 닿으려 하는 듯한 트릴과 아르페지오의 끝없는 이어짐은 약간 몽환적으로도 들리고, 어느 새 조금씩 하강하면서 한없이 편안해지고 따스해지는 느낌을 담으며 연주는 담백하게 마무리된다. 


다소 빠른 템포로 연주하는 켐프(DG)의 음반이 인간을 초월하여 우주에 닿았다가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돌아가는 듯한 극적인 고양감과 영원으로의 회귀를 느끼게 한다면, 키신은 우주를 바라보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명상하는 듯한 느낌의 해석을 들려준다. 이 연주가 최고라거나 반드시 들어야한다고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신선한 해석이고 실황 연주에서 느낄 수 있는 아찔함을 담았으면서도 다행스럽게 관객의 소음이 최소한으로만 방해하기에 생생한 현장감을 즐길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키신이 완벽함을 내려놓고 음악에 담긴 감성에 더욱 다가가는 성숙한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음반으로 소장하고 즐길만하며, 지금은 Apple Music과 Melon으로 들었지만 CD보다 고음질 음원이 출시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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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 - 진아식당 MENU.2 RANDOM

Music 2017. 9. 11. 22:08

케이팝스타에서 이진아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냠냠냠"을 듣고서는 그 짜임새와 대중성의 결합에 놀라고 감탄했다. 그리고 초반 경연 영상을 다시 찾아봤고 "마음대로"에 담긴 순수하고 사려깊은 마음에 깊이 감동했다. 이후 케이팝스타 3위를 할 때까지 열심히 응원하고 매번 본방을 사수하며 1집 앨범까지 구입해서 들었었다. 


안테나와 계약하여 유희열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음악이 어떻게 발전할지 기대했었는데, 작년에 6월에 나온 진아식당 첫 메뉴인 애피타이저 앨범은 두곡 뿐이기도 했고, 멋은 부렸지만 음악 자체가 가슴에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은 약해져서 좀 아쉬웠었다. 오히려 8월에 나온 SM 출신 온유와의 콜라보인 "밤과 별의 노래"가 은은한 정통 재즈 풍으로 맛깔나는 음악에 정갈하고 아름다운 가사가 어우러져 무척 마음에 드는 곡이었다.


다시 1년이 지나 올해 7월 진아식당 둘째 메뉴인 랜덤 앨범이 나왔다. 음반의 첫 두곡인 "계단"과 "랜덤"은 다소 작년의 애피타이저 앨범처럼 너무 과하게 멋을 부렸다는 느낌이었지만, 나머지 다섯 곡은 너무 힘들이지 않고 직접적으로 듣는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음악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아주 알찬, 계속 듣고 싶은 앨범이 되었다.


첫 곡 "계단"은 강렬한 낮은 음의 연타가 이어지는 피아노 연주로 시작되는데, 그 이후 이어지는 노래는 천천히 한 걸음씩 계단을 내딛으며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또래들에게 위로를 보내는 이진아의 순수하고 따뜻한 응원가이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화려한 피아노 연주가 기분 좋게 곡을 마무리한다.


타이틀곡인 "RANDOM"도 "계단"처럼 다소 과격한 느낌의 피아노 전주로 시작하는데, 랜덤함을 더함으로써 편견에 사로잡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의 알듯말듯한 곡이다. 흥겨운 느낌도 있지만 굳이 이곡을 왜 타이틀곡으로 했는지 궁금하다. 


"별것도 아닌 일"은 일상 속에서 좋아하다가 헤어진 사람에 대해 계속 다시 생각이 나는 상황을 섬세하게 사실적인 가사로 노래하는 소박한 곡인데, 후렴부의 리듬이 좀 단조롭고 반복이 많아 매력이 약간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Everyday"는 좋아하는 사람을 매일 보고 싶다는 행복한 느낌을 흥겨운 리듬으로 사랑스럽게 부르는 곡이다. 화려한 브라스 편성과 피아노 연주 솜씨가 펼쳐지는 간주와 후반부는 신나는 느낌을 더해 준다.  


"어디서부터"는 피아노만의 반주에 우수에 젖은 듯한 잔잔한 목소리로 우울하게 읇조리며 시작해서는 어느새 느릿한 보사노바 스타일의 후렴으로 이어지는데 여전히 우울하고 후회에 잠긴 서정적으로 전곡의 분위기를 유지한다. 


"밤, 바다, 여행"은 한편 흥겨운 리듬감이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몽환적이고 살짝 슬픔에 젖은 듯한 멜로디로 정말 제목처럼 밤 바다 여행 때 해변을 거닐며 들으면 어울릴 듯한 곡이다.


앨범의 마지막 곡인 "오늘을 찾아요"는 자신을 성찰하고 소중한 오늘 최선을 다해 살아가자는 다짐과 격려를 담아 잔잔하게 되뇌이는 듯한 전반부와 온화하지만 내재된 힘을 가진 매력적인 후렴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준다. 


이 앨범을 유심히 들어보면 "냠냠냠"이나 "마음대로" 만큼 정제된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기 보다는 일곱 곡 각각이 전혀 다른 스타일과 정서를 담고 있어 여전히 발전과 성숙의 방향을 찾아 다양한 시도를 하며 자기 역량을 펼쳐보이는 성장하는 이진아의 모습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월말에 있었던 첫 단독 콘서트에도 갔었는데, 1집 앨범부터 이번 앨범, 케이팝스타 때의 음악까지 알차게 담아 완성도 높은 재즈 트리오 공연을 보여줬고, 가사 전달력이나 가창력도 예전보다 많이 발전했다고 느꼈다. 예전에 방송에서 보면 말하기도 부끄러워하던 수줍음 많은 소녀 같았던 사람이 혼자서 진행을 주도하면서 다양한 농담도 하는 것에 놀랐다.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음악과 관객을 사랑하는 가수라는 걸 새삼 느꼈고, 앞으로 더욱 좋은 음악을 많이 들려주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opus111

한강 - 희랍어 시간

Book 2017. 9. 11. 00:13
채식주의자, 흰, 소년이 온다에 이어 한강의 책으로 네권째 읽게 되었다.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너무나 예민하고 날카로와, 한강의 문장을 읽다보면 눈을 피하고 싶고 숨이 갑갑해져 크게 힘을 들여 호흡을 해야할 때가 많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수시로 바뀌는 화자와 시간과 공간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천천히 집중해서 읽어야만 그 서사의 흐름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게 만든다. 주인공의 삶에 쌓여온 경험들은 누구나 겪어봤을만한 것들이 많지만, 숨막히는 현실과 극도로 예민한 감수성이 결합되어 읽는 사람이 견디기 어렵도록 처절하고 탈출구가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특히 명확한 원인이 없이 병적인 심각한 이상 증상에 시달리게 되는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급격하게 변화를 겪으며 무자비하게 사회 속에서 삶이 짓눌려지고 무기력하게 겨우 생존만을 위해서 앞만 보고 매일을 버텨내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 대한 적나라한 초상이다.

그래도 희랍어 시간은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에 비하면 마지막에 어렴풋하나마 희망을 보여주고 있어 책을 덮은 후 마음의 불편함은 가장 덜한 편이다. 다만 장편 소설 세권을 1년 남짓 기간에 읽게 되니 작가의 소설 구성 및 진행 스타일에 유사한 요소들이 눈에 많이 띄고, 약간 도식적인 느낌도 있어 앞서 두권에 비해 감흥은 미약하다.

그래도 언어라는 것에 대해 작가가 갖고 있는 아주 정밀하고 섬세한 감각을 글의 주요 소재로 사용하여, 작가 자신의 내면을 좀 더 직접적으로 독자에게 드러내보였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 더 가까이 다가가 이해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책 속의 남자와 여자는 번갈아가며 각 챕터의 주인공이 되어 전지적 작가에 의해 그들의 속내와 병의 양상을 독자에게 드러내는데 책장을 넘겨감에 따라 점점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 결국은 하나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한강의 책을 좀 더 읽어보려 하는데, 예사롭지 않은 감수성을 가진 작가인 만큼 형식적으로 너무 새로운 틀을 만들어 이야기를 짜넣으려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흐름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간 소설이 있다면 더 기대하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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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2017. 9. 10. 23:29
최근에 EMERGING TECHNOLOGY를 발굴하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 비교적 요새 나온 책들 중 회사 도서관에서 골라 읽게 되었다.

와이어드 잡지의 공동창간자이자 편집장이었던 케빈 켈리는 이 책에서 미래의 기술과 사회의 발전 방향을 12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하나씩 읽어보면 다 아는 얘기이지만, 다소 황당하다 느껴질 수 있는 생각까지 대담하게 확장해가며 다양한 방향성을 그려낸다.

특히 미국인으로서 자유주의, 개인주의에 익숙한 저자가 인터넷에서 현재 가장 강한 트렌드인 공유에 의한 발전을 새로운 사회주의라 부르며, 미래에는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공유 방식에 의해 가장 큰 부와 문화 성장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 예측하는 부분은 가장 흥미롭다.

전 세계의 모든 책, 음악, 영화를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경험하고, 그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주석으로 덧붙이며 이를 누구나 서로 참조할 수 있게 되는 미래를 그리고 있는데, 현실이 완벽하게 이를 구현하진 못하더라도 그 비슷한 방향으로 발전해간다면 재밌겠다고 기대한다.

책 자체는 기술의 발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화두를 던져줄 것이나, 아주 신선한 새로운 기술을 찾는다면 단시일 내에 그런 것이 나오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발전을 목도하고 있는 기술들이 더욱 고도화되고 결합되어 지금은 꿈과 같은 것들이 현실에서 실현될 것이라는 점을 느끼게 한다.

지난 30년 동안 통신, 인터넷, 검색/광고, 스마트폰, 공유경제의 발전이 순식간에 수많은 산업을 뒤엎고 사람들의 일상을 바꿔놓았다면, 앞으로 30년간은 여기에 더해서 인공지능, 데이터, 클라우드, AR/VR, 센서와 웨어러블이 그 변화를 더욱 가속할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도 그 트렌드와 변화의 첨단을 직접 목격해왔으면서도 여러 차례 잘못된 판단과 미래 예측을 해 왔음을 책에서 솔직히 적어 두고 있다.

과거의 기술 발전을 돌이켜보면 하드웨어의 발전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같이 하나의 기능을 고도로 집적하는 기술은 무어의 법칙을 그대로 따라 가며 기하급수적인 물적 성장의 근간이 되어왔으나 이제 그야말로 기술 자체가 물리적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또한 로봇이나 AR/VR 등 하드웨어 기반으로 고도의 소프트웨어 기술과 함께 이 둘이 결합되어 인간과 유기적으로 연계하기 위한 복잡한 구조적 설계가 필요한 것들로, 사람들의 상상에 비해 실현되는 속도는 여전히 느린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기술도 인간이 기억하고 학습하는 방식을 모델로 하여 급격히 발전하고 있으나, 인간이 아직 뇌의 작동 방식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많은 이들이 걱정하듯 인간처럼 사고하고 인간을 지배하는 인공지능의 출현은 요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방대한 데이터와 결합하여 분석하고 예측하는 일은 인간보다 더 잘하게 될 것이 분명한 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전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측면에 막대한 혼란을 초래할 날이 10~20년 내에 오리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정치 경제 사회 측면에서 인간이 이룩한 현재 시스템의 변화 속도는 너무나 느려서, 기술 발전을 쫓아가지 못할 뿐 아니라 그 틈바구니에서 삶을 영위해야 하는 인간 자신에게 무자비한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결국 모든 인간이 서로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돕고 보살펴주는 것 뿐이나, 금전만능주의로 인해 피폐된 사람들의 가슴속에 인간애의 불꽃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얼마나될지, 불과 10~20년 후에 펼쳐질 다가오는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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