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 - 진아식당 MENU.2 RANDOM

Music 2017. 9. 11. 22:08

케이팝스타에서 이진아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냠냠냠"을 듣고서는 그 짜임새와 대중성의 결합에 놀라고 감탄했다. 그리고 초반 경연 영상을 다시 찾아봤고 "마음대로"에 담긴 순수하고 사려깊은 마음에 깊이 감동했다. 이후 케이팝스타 3위를 할 때까지 열심히 응원하고 매번 본방을 사수하며 1집 앨범까지 구입해서 들었었다. 


안테나와 계약하여 유희열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음악이 어떻게 발전할지 기대했었는데, 작년에 6월에 나온 진아식당 첫 메뉴인 애피타이저 앨범은 두곡 뿐이기도 했고, 멋은 부렸지만 음악 자체가 가슴에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은 약해져서 좀 아쉬웠었다. 오히려 8월에 나온 SM 출신 온유와의 콜라보인 "밤과 별의 노래"가 은은한 정통 재즈 풍으로 맛깔나는 음악에 정갈하고 아름다운 가사가 어우러져 무척 마음에 드는 곡이었다.


다시 1년이 지나 올해 7월 진아식당 둘째 메뉴인 랜덤 앨범이 나왔다. 음반의 첫 두곡인 "계단"과 "랜덤"은 다소 작년의 애피타이저 앨범처럼 너무 과하게 멋을 부렸다는 느낌이었지만, 나머지 다섯 곡은 너무 힘들이지 않고 직접적으로 듣는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음악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아주 알찬, 계속 듣고 싶은 앨범이 되었다.


첫 곡 "계단"은 강렬한 낮은 음의 연타가 이어지는 피아노 연주로 시작되는데, 그 이후 이어지는 노래는 천천히 한 걸음씩 계단을 내딛으며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또래들에게 위로를 보내는 이진아의 순수하고 따뜻한 응원가이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화려한 피아노 연주가 기분 좋게 곡을 마무리한다.


타이틀곡인 "RANDOM"도 "계단"처럼 다소 과격한 느낌의 피아노 전주로 시작하는데, 랜덤함을 더함으로써 편견에 사로잡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의 알듯말듯한 곡이다. 흥겨운 느낌도 있지만 굳이 이곡을 왜 타이틀곡으로 했는지 궁금하다. 


"별것도 아닌 일"은 일상 속에서 좋아하다가 헤어진 사람에 대해 계속 다시 생각이 나는 상황을 섬세하게 사실적인 가사로 노래하는 소박한 곡인데, 후렴부의 리듬이 좀 단조롭고 반복이 많아 매력이 약간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Everyday"는 좋아하는 사람을 매일 보고 싶다는 행복한 느낌을 흥겨운 리듬으로 사랑스럽게 부르는 곡이다. 화려한 브라스 편성과 피아노 연주 솜씨가 펼쳐지는 간주와 후반부는 신나는 느낌을 더해 준다.  


"어디서부터"는 피아노만의 반주에 우수에 젖은 듯한 잔잔한 목소리로 우울하게 읇조리며 시작해서는 어느새 느릿한 보사노바 스타일의 후렴으로 이어지는데 여전히 우울하고 후회에 잠긴 서정적으로 전곡의 분위기를 유지한다. 


"밤, 바다, 여행"은 한편 흥겨운 리듬감이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몽환적이고 살짝 슬픔에 젖은 듯한 멜로디로 정말 제목처럼 밤 바다 여행 때 해변을 거닐며 들으면 어울릴 듯한 곡이다.


앨범의 마지막 곡인 "오늘을 찾아요"는 자신을 성찰하고 소중한 오늘 최선을 다해 살아가자는 다짐과 격려를 담아 잔잔하게 되뇌이는 듯한 전반부와 온화하지만 내재된 힘을 가진 매력적인 후렴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준다. 


이 앨범을 유심히 들어보면 "냠냠냠"이나 "마음대로" 만큼 정제된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기 보다는 일곱 곡 각각이 전혀 다른 스타일과 정서를 담고 있어 여전히 발전과 성숙의 방향을 찾아 다양한 시도를 하며 자기 역량을 펼쳐보이는 성장하는 이진아의 모습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월말에 있었던 첫 단독 콘서트에도 갔었는데, 1집 앨범부터 이번 앨범, 케이팝스타 때의 음악까지 알차게 담아 완성도 높은 재즈 트리오 공연을 보여줬고, 가사 전달력이나 가창력도 예전보다 많이 발전했다고 느꼈다. 예전에 방송에서 보면 말하기도 부끄러워하던 수줍음 많은 소녀 같았던 사람이 혼자서 진행을 주도하면서 다양한 농담도 하는 것에 놀랐다.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음악과 관객을 사랑하는 가수라는 걸 새삼 느꼈고, 앞으로 더욱 좋은 음악을 많이 들려주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opus111

한강 - 희랍어 시간

Book 2017. 9. 11. 00:13
채식주의자, 흰, 소년이 온다에 이어 한강의 책으로 네권째 읽게 되었다.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너무나 예민하고 날카로와, 한강의 문장을 읽다보면 눈을 피하고 싶고 숨이 갑갑해져 크게 힘을 들여 호흡을 해야할 때가 많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수시로 바뀌는 화자와 시간과 공간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천천히 집중해서 읽어야만 그 서사의 흐름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게 만든다. 주인공의 삶에 쌓여온 경험들은 누구나 겪어봤을만한 것들이 많지만, 숨막히는 현실과 극도로 예민한 감수성이 결합되어 읽는 사람이 견디기 어렵도록 처절하고 탈출구가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특히 명확한 원인이 없이 병적인 심각한 이상 증상에 시달리게 되는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급격하게 변화를 겪으며 무자비하게 사회 속에서 삶이 짓눌려지고 무기력하게 겨우 생존만을 위해서 앞만 보고 매일을 버텨내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 대한 적나라한 초상이다.

그래도 희랍어 시간은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에 비하면 마지막에 어렴풋하나마 희망을 보여주고 있어 책을 덮은 후 마음의 불편함은 가장 덜한 편이다. 다만 장편 소설 세권을 1년 남짓 기간에 읽게 되니 작가의 소설 구성 및 진행 스타일에 유사한 요소들이 눈에 많이 띄고, 약간 도식적인 느낌도 있어 앞서 두권에 비해 감흥은 미약하다.

그래도 언어라는 것에 대해 작가가 갖고 있는 아주 정밀하고 섬세한 감각을 글의 주요 소재로 사용하여, 작가 자신의 내면을 좀 더 직접적으로 독자에게 드러내보였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 더 가까이 다가가 이해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책 속의 남자와 여자는 번갈아가며 각 챕터의 주인공이 되어 전지적 작가에 의해 그들의 속내와 병의 양상을 독자에게 드러내는데 책장을 넘겨감에 따라 점점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 결국은 하나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한강의 책을 좀 더 읽어보려 하는데, 예사롭지 않은 감수성을 가진 작가인 만큼 형식적으로 너무 새로운 틀을 만들어 이야기를 짜넣으려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흐름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간 소설이 있다면 더 기대하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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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vin Kelly - The Inevitable

Book 2017. 9. 10. 23:29
최근에 EMERGING TECHNOLOGY를 발굴하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 비교적 요새 나온 책들 중 회사 도서관에서 골라 읽게 되었다.

와이어드 잡지의 공동창간자이자 편집장이었던 케빈 켈리는 이 책에서 미래의 기술과 사회의 발전 방향을 12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하나씩 읽어보면 다 아는 얘기이지만, 다소 황당하다 느껴질 수 있는 생각까지 대담하게 확장해가며 다양한 방향성을 그려낸다.

특히 미국인으로서 자유주의, 개인주의에 익숙한 저자가 인터넷에서 현재 가장 강한 트렌드인 공유에 의한 발전을 새로운 사회주의라 부르며, 미래에는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공유 방식에 의해 가장 큰 부와 문화 성장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 예측하는 부분은 가장 흥미롭다.

전 세계의 모든 책, 음악, 영화를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경험하고, 그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주석으로 덧붙이며 이를 누구나 서로 참조할 수 있게 되는 미래를 그리고 있는데, 현실이 완벽하게 이를 구현하진 못하더라도 그 비슷한 방향으로 발전해간다면 재밌겠다고 기대한다.

책 자체는 기술의 발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화두를 던져줄 것이나, 아주 신선한 새로운 기술을 찾는다면 단시일 내에 그런 것이 나오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발전을 목도하고 있는 기술들이 더욱 고도화되고 결합되어 지금은 꿈과 같은 것들이 현실에서 실현될 것이라는 점을 느끼게 한다.

지난 30년 동안 통신, 인터넷, 검색/광고, 스마트폰, 공유경제의 발전이 순식간에 수많은 산업을 뒤엎고 사람들의 일상을 바꿔놓았다면, 앞으로 30년간은 여기에 더해서 인공지능, 데이터, 클라우드, AR/VR, 센서와 웨어러블이 그 변화를 더욱 가속할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도 그 트렌드와 변화의 첨단을 직접 목격해왔으면서도 여러 차례 잘못된 판단과 미래 예측을 해 왔음을 책에서 솔직히 적어 두고 있다.

과거의 기술 발전을 돌이켜보면 하드웨어의 발전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같이 하나의 기능을 고도로 집적하는 기술은 무어의 법칙을 그대로 따라 가며 기하급수적인 물적 성장의 근간이 되어왔으나 이제 그야말로 기술 자체가 물리적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또한 로봇이나 AR/VR 등 하드웨어 기반으로 고도의 소프트웨어 기술과 함께 이 둘이 결합되어 인간과 유기적으로 연계하기 위한 복잡한 구조적 설계가 필요한 것들로, 사람들의 상상에 비해 실현되는 속도는 여전히 느린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기술도 인간이 기억하고 학습하는 방식을 모델로 하여 급격히 발전하고 있으나, 인간이 아직 뇌의 작동 방식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많은 이들이 걱정하듯 인간처럼 사고하고 인간을 지배하는 인공지능의 출현은 요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방대한 데이터와 결합하여 분석하고 예측하는 일은 인간보다 더 잘하게 될 것이 분명한 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전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측면에 막대한 혼란을 초래할 날이 10~20년 내에 오리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정치 경제 사회 측면에서 인간이 이룩한 현재 시스템의 변화 속도는 너무나 느려서, 기술 발전을 쫓아가지 못할 뿐 아니라 그 틈바구니에서 삶을 영위해야 하는 인간 자신에게 무자비한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결국 모든 인간이 서로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돕고 보살펴주는 것 뿐이나, 금전만능주의로 인해 피폐된 사람들의 가슴속에 인간애의 불꽃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얼마나될지, 불과 10~20년 후에 펼쳐질 다가오는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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